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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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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제2차 중동 전쟁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이집트와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군이 국경을 넘어 시나이 반도를 침공하여 시작되었다. 제1차 중동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일어난 두 번째 전쟁을 제2차 중동 전쟁이라고 한다.

제1차 중동 전쟁 후 국제 연합은 UN 휴전 감시 기구를 만들었으며, 아랍-이스라엘은 쌍방의 '혼합 휴전 위원회'의 설치를 합의하였다. 하지만 휴전 성립 후에도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대립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고, 양국은 군비를 더욱 강화하였다. 1956년 이집트 대통령에 취임한 G.A. 나세르는 그해 7월  국과 프랑스의 공동 소유로 되어 있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 선언하고, 이스라엘 선박에 대한 수에즈 운하의 통과를 금지하였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나세르 대통령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맞서 양국의 공동 재산인 운하 운영권을 되찾고, 원유의 안전 항행로를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이스라엘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켰다.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군은 이집트 국경 부근에 있던 3만 명을 동원하여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침입하였다. 이스라엘의 진격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약속보다 5일 늦게 참전하였던 영국과 프랑스는 할일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대해 이집트군은 격렬하게 대응하였다. 세계 각국은 이스라엘을 비난하였고, 미국도 이스라엘에 대해 즉시 철수를 요청하였다. 소련은 이스라엘의 이집트 침공이 수에즈 운하를 이집트로부터 서방 국가 손에 넘기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라고 주장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30일 양국에 24시간 이내에 정전하지 않으면 수에즈 운하를 지키기 위해 수에즈 지대로 상륙하겠다고 통고하였다. 하지만 31일 철수 시한이 끝나기 4시간 전에 운하 지대에 맹폭격을 개시하였다. 전세는 3국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연합의 철군 요구와 세계 여론의 압력으로 3국은 정치적 곤경에 놓이게 되었다. 


국제 연합은 긴급 특별 총회를 소집하여 즉시 철수와 유엔군 파견 결의를 채택, 정전과 감시를 위한 유엔 긴급군을 파견하였다. 이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는 즉각 철수하였고, 이스라엘은 1957년 3월에 점령지로부터 철수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에서 이겼으나 결과적으로 전쟁 도발국이라는 불명예 속에 수에즈 운하를 영원히 잃어버렸다.


또한 이 전쟁은  미국과 소련에게는 중동 지역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세르가 주창한 아랍 민족주의가 더 거세지는 결과를 낳았다. 불타오른 아랍 민족주의는 1964년 1월, 아랍 정상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전사자를 수송하고 있는 유엔군: 중동 전쟁은 군사적인 측면에서 영국-프랑스-이스라엘군의 일방적 승리였지만, 이들 3개국은 국제 사회에서 침략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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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인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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