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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마틴 루서 킹, 노벨 평화상 수상 (King, M. L. Jr., 1929~1968 )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서 킹이 1964년 10월 14일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킹 목사는 1929년 1월 15일 미국의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침례 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킹은 1948년 모어하우스 대학과 크로저 신학 대학을 졸업하였
다. 킹 목사는 대학 시절부터 비폭력 저항 운동, 인종 차별주의 철폐, 식민지 해방 운동 등을 주창한 인도의 독립 운동가 간디의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또 미국의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人頭稅)의 납부를 거부한 죄로 투옥된 소로에게서도 영향을 받았
다. 소로는 개인적 신념이나 사회적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 분명한 국가의 법과 집행에 대해 비폭력적으로 저항할 것을 주장했다.


보스턴 대학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는 1954년 앨라배마 주의 침례 교회 목사로 취임하였다. 목사가 된지 2년째인 1955년 12월, 킹 목사는 시내버스에서의 흑인 차별 대우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을 조직했다.

사건은 12월 1일 오후 여섯 시 경,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에서 백화점 재봉사로 일하는 로사 파크스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 자리에 앉은 것에서 시작했
다.

당시에 인종에 따라 버스 좌석을 나누는 조례가 시행되었는데, 백인 좌석이 다 차면 흑인 좌석에 앉은 승객들에게 일어나도록 요구해 백인이 앉도록 하는 것이 관행이었
다. 대개 흑인들은 이 관행에 따랐지만 지친 로사 파크스는 이를 거부했다.

버스 기사는 경찰을 불렀고 로사 파크스는 인종 차별법인 짐 크로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
다. 킹 목사는 이에 ‘버스 안 타기 운동’ 등을 벌였고, 이 운동에서 승리하여 흑인 인권 운동의 지도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다. 1964년에는 비폭력주의를 바탕으로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968년 3월, 킹 목사는 흑인 환경 미화원들이 파업하고 있는 테네시 주 멤피스 시로 향했다. 노동자들은 날씨가 좋지 않아 일을 하지 못하고 귀가했는데, 백인 노동자들이 하루 임금을 모두 받은 반면, 흑인 노동자들은 두 시간 임금을 받은 것이 문제였다.

당시 킹 목사가 멤피스로 가는 항공편을 폭파하겠다는 위협이 있어서 출발이 늦어지는 일도 있었
다. 킹 목사는 흑인 인권 운동에 나서면서 여러 차례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킹 목사가 멤피스의 한 모텔에 투숙한 뒤 일이 벌어졌다. 그는 모텔의 2층 발코니에 서 있었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저격당했다. 총알은 뺨을 뚫고 턱을 관통하여 척수를 망가뜨렸고, 저격된 지 약 한 시간 뒤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39살이었다.


*인두세: 납세 능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각 개인에게 일률적으로 매기는 세금. 원시적 조세 형태의 하나이다.


 

“인도에 머물면서 나는 비폭력 저항의 방법이야말로, 정의와 존엄을 위해 투쟁하는 억압받는 사람들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굳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간디는 우주의 도덕적 질서 안에 깃든 보편적 원리를 일생을 통해 온 몸으로 실천했습니다. 그 원리는 중력의 법칙만큼이나 분명하고 불가피한 것입니다.”(1959년 인도의 라디오 연설 중)


“흑인이 경찰의 무지막지한 폭력의 공포에 희생되고 있는 한, 우리에게 민족이란 없습니다. 흑인이 여행하다가 피곤에 지쳤을 때 고속도로 근처의 여관이나 시내의 호텔에 잠자리를 얻을 수 없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이 이주한다고 해야, 고작 작은 흑인 거주지에서 더 큰 흑인 거주지로 가는 것이 전부일 때, 우리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미시시피의 흑인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뉴욕의 흑인이 마땅히 투표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정당성이 힘찬 흐름이 될 때까지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중략)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던 저 황폐한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1963년 8월 28일 워싱턴 평화 행진 연설 중)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긴 장례를 할 생각은 마십시오. 긴 *조사(弔辭)도 하지 마십시오. 또 내가 노벨상 수상자라는 것과 그밖에 많은 상을 탄 사람이라는 것도 언급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날, 마틴 루서 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려 했으며, 전쟁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또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기 위해 애썼으며, 인간다움을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 몸바쳤다는 것이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1968년 2월 4일 조지아 주 애틀랜타 에버니저 교회에서의 마지막 연설 중)


*조사(弔辭): 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조문(弔文)의 뜻을 표하는 글이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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