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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HOME 나눔 · 소통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소년(少年)" 창간

1908년 11월 1일 창간되어 1911년 5월 1일 통권 23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새로운 지식의 보급과 계몽, 강건한 청년 정신의 함양에 주력하였다. 계몽적인 내용으로 말미암아 일제에 의해 여러 차례 발매 금지와 정간을 당하였다.


1908년 11월 1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근대적인 형식을 갖춘 월간 종합 잡지 "소년"이 창간되었다. 최남선이 직접 인쇄 시설을 장만해 창간하였고, 편집 겸 발행인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 최남선은 집필자로 참여해 제작까지 전담했을 뿐이고, 편집 겸 발행인은 그의 형인 최창선이었음이 밝혀졌다.

“소년”은 60여 쪽으로 값이 14전이었으며, 창간호 독자는 6명, 2호는 14명에 불과했고 1년이 지나도록 200명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아동과 어른을 모두 대상으로 하는 종합지 성격의 개화기 계몽 잡지였다. 
“소년”은 제3권 제2호부터 개인 잡지의 성격을 벗어나 이광수, 홍명희의 글도 실었다. 이후 신체시를 비롯하여 세계의 역사, 지리, 우화(寓話), 영웅전, 소설 등을 실었으며, 1911년 5월 15일 발행된 제4권 제2호에 실린 박은식의 ‘왕양명선생실기’로 인해 일제에 의해 압수, 잡지의 발행이 폐간될 때까지 통권 23호가 간행되었다.


“소년” 창간호 권두에 실린 최남선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최초의 신체시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는 4
·4 조, 7·5조 등 자수율의 제약을 받던 개화기 가사나 창가 형태를 벗어난 신체시로, 현대시의 발전 과도기를 보여 주었다.


최남선은 대한 제국기와 일제 강점기 출판계, 문학계, 사학계, 언론계, 정치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활발한 활동을 펼친 지식인으로, 기미독립선언문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말기에 학병 권유 등의 친일 행위를 하여 전반기에 보여 주었던 민족주의자로서의 활동에 오점을 남겼다.


한국 잡지 협회는 1965년 "소년"의 창간일인 11월 1일을 '잡지의 날'로 제정하였고, 이후 매년 기념하고 있다. 1987년에 한국 시인 협회, 한국 현대 시인 협회는 “소년” 권두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기념하여 ‘시의 날’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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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의 사진은 국립한글박물관이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소년'을 이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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