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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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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사망 (Arendt, H., 1906~1975 )

독일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서 활약한 정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가 1975년 12월 4일 세상을 떠났다.


당대의 뛰어난 철학자들을 스승으로 삼다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조숙하고 명석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에서의 청강을 거쳐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에 입학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지도를 받았고, 후설을 거쳐,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의 제목은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1929)’였다.



스승과 사랑에 빠지다

아렌트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하며 스승인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졌다. 하이데거는 당시 유부남이었고 아렌트보다 열일곱 살이 많았다. 그러나 둘은 사랑했고,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훗날 하이데거는 아렌트가 없었다면 “존재와 시간”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하여 아렌트와의 인연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아렌트는 1929년 철학자 귄터 슈테른과 결혼하여(1936년에 이혼했다) 베를린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가 베를린을 장악하였고 그녀가 유대 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게 체포되었다가 석방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일을 겪은 뒤 아렌트는 파리로 망명하여 반나치 운동을 하였고, 1940년에 독일이 그녀가 있던 프랑스를 점령하자 1941년에는 두 번째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다시 한 번 망명했다. 그녀는 뉴욕에 거주하며 미국의 지식인으로 활동하였다.


정치 철학자 아렌트

아렌트는 1951년에 낸 “전체주의의 기원”을 통해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서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를 통해 왜 그리고 어떻게 20세기의 대표적 정치 현상이 되었는지를 서술하고, 현대 사회가 어떻게 이러한 가공할 폭력 장치를 만들어냈는지를 분석한다. 아렌트는 “정치는 여전히 의미를 갖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아렌트에게 전체주의는 가장 극단적 형태의 정치 부정이다. 전체주의는 인간의 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총체적으로 폐지하려 한다고 봤다.


아렌트는 1953년부터는 프린스턴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버클리 대학교, 시카고 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1958년에 낸 두 번째 책 “인간의 조건”으로 정치 철학자로서 인정받았다. 이후에도 1961년에 “과거와 미래 사이”, 1963년에 “혁명론” 등을 발표하며 정치 철학자로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1961년에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소식을 듣고 예정되었던 대학 강의를 모두 취소하고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가 재판을 참관하였다. 그녀는 재판에 관한 보고서 형식의 원고를 ‘뉴요커’에 연재하였다.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자”였다. 그는 전혀 도착적이거나 가학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괴물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다. 아렌트는 이로부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도출하였고, 이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원고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으로 출간되었다.


아렌트는 “정신의 삶”의 원고를 집필하던 1975년 12월 4일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교과서 속 아렌트

아이히만과 칸트(2009개정 “윤리와 사상” 176쪽)

"아돌프 아이히만(Eichmann, K. A., 1906~1962)은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서 유대 인들을 학살한 책임자였다. 그는 독일이 패전한 후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살다가 1960년에 이스라엘의 비밀경찰에 붙잡혀 재판을 받았다. 그 재판을 참관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Arendt, H., 1906~1975)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이 전 생애에 걸쳐 칸트의 의무에 대한 정의에 따라 살아왔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서술하였다. 아이히만은 재판을 받으며 칸트에 대해 언급하면서 “제가 말하려 한 것은, 나의 의지의 원칙이 항상 일반적인 법의 원칙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히만은 실천 이성이 부여한 도덕 법칙이 아니라 히틀러에 대한 복종을 도덕 법칙으로 삼았다. 아이히만은 1962년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국내 번역된 대표 저서

-“공화국의 위기”(김선욱 옮김, 한길사, 201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인간의 조건”(이진우, 태정호 옮김, 한길사, 1996)

-“전체주의의 기원1”(박미애, 이진우 옮김, 한길사, 2006)

-“전체주의의 기원2”(박미애, 이진우 옮김, 한길사, 2006)

-“정치의 약속”(김선욱 옮김, 푸른숲, 2007)

-“폭력의 세기”(김정한 옮김, 이후, 1999)

-“혁명론”(홍원표 옮김, 한길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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