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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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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신의주 반공 학생 의거

1945년 11월 23일 신의주에서 학생들이 소련과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반소ㆍ반공 의거를 일으켰다.

1945년 11월 21일, 신의주 용암포의 구세 학교에서 열린 시민 대회에서 학생 대표가 공산당의 만행과 소련 군정의 억압과  행패를 ·규탄하는 한편, 공산당의 정치 훈련소로 사용하고 있는 수산 학교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군중들이 이에 호응하여 기세를 올리자, 환영 대회는 삽시간에 공산당 규탄 대회로 변하였다. 당황한 공산당은 보안대를 앞세워 이들을 진압하면서 충돌이 일어나 학생 및 시민이 중상을 입었다.


이 소식이 신의주시에 있는 평안북도 학생 자치대 본부에 전해지자, 격분한 신의주시 6개 남녀 중학생들은 11월 23일 오전  학교 강당에 모여 ‘공산당 타도’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오후 2시를 기하여 신의주의 모든 중등학교 학생 3,500여 명은 학생 대표의 호소문 낭독에 이어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학생들은 '공산당을 몰아내자', '소련군 물러가라', '학원의 자유를 쟁취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시가지를 행진하였다. 
시위대를 향한 소련군과 공산당의 무차별 사격으로 23명의 학생이 피살되었고, 7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2천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투옥되었다.


이 사건은 광복의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의 만행과 이들과 야합한 북한 공산당의 탄압 행위로 인하여 폭발하였다. 특히 신의주는 국경 지대에 위치하여 공산당들의 행패가 가장 심하였고, 그들의 조직적 탄압이 학원에까지 침투하자, 학생들은 학원의 신성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항쟁하였다.

신의주 학생 의거는 북한 주민의 반공 의식을 대변한 것이며, 학생들의 민족적 의기와 애국심의 발로였다. 이를 계기로 반공 의식이 고조되어 북한 각지에서는 이러한 반공 의거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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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인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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