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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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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1968년 1월 23일 북한 영해 근처에서 나포된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승무원 82명이 판문점을 통해 12월 23일 석방되었다.

1968년 1월 23일 미국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힌 영해인 원산 앞바다에 접근하자 북한 초계정이 국제신호로 ‘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라고 하며 정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푸에블로호가 공해상을 이유로 정지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곧 북한  미그기 두 대가 나타나 위협 비행을 했으며, 구잠함 두 척과 초계정도 네 척으로 늘어났다.

 


북한 함정은 푸에블로호의 앞 뒤를 둘러싸고 ‘우리를 따르라’라고 신호하였다. 푸에블로호 로커 함장은 곧 무전사에게 일본 요코스카 기지로 SOS를 타전토록 하고 북한 선박들로부터 탈출을 시도하였다. 순간 북한군 구잠함의 포문이 불을 뿜었고 푸에블로호의 레이더와 통신·항해 마스트가 떨어져 나갔다.


푸에블로호는 첩보함이었기 때문에 북한과 교전할 정도의 무기는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절망한 부커 함장은 결국 부하들에게 푸에블로호의 정지를 명하고, 급한 대로 최신 전자 장치를 파괴하고 기밀 문서를 소각하라고 지시하였다.

푸에블로호는 북한에 끌려가면서 계속 교신을 하였으나, 구원의 손길은 오지 않았다. 이날 오후 2시 32분쯤 푸에블로호는 ‘무전을 끊는다.’라는 마지막 전문을 보냈다. 5대양을 지배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최신예 해군 정보함이 북한 해군에 피랍되는 수모를 겪는 순간이었다.

 

피랍 다음날인 1월 24일 존슨 미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였다. 그 다음날 존슨 대통령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래 처음으로 공군 및 해군 항공대 예비역 동원령을 내리고 전투기·수송기에 출동 태세를 갖추라고 명령하였다. 이틀 전 1·21 사태와 함께 온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은 바야흐로 한반도를 6·25 전쟁 이후 최대의 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다.

 

미국은 북한의 도발 행위를 비난하고, 푸에블로호와 승무원의 즉각 송환을 요청하였지만, 북한은 북한 영역을 침범하였다는 이유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동시에 미국에 사과를 요구하였다. 결국 미국 측은 판문점에서 북한 측과 28차에 걸친 비밀 협상을 벌여 영해 침범을 사과하며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영해 침입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조건으로 승무원을 송환키로 북한과 합의하였다.

 

사건 발생 11개월 만인 12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승무원 82명과 시체 1구가 송환되어 사건은 마무리되었니다. 승무원 83명 가운데 1명은 피랍 당시 북한 측의 위협 사격으로 숨졌다. 석방된 승무원들은 다음날 가족들과 크리스마스가 기다리는 고국으로 떠났다.

(출처: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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