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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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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외규장각 의궤

외규장각은 규장각 부속 기관으로 의궤를 비롯한 많은 도서를 보관하고 있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가 2011년 5월 우리나라에 영구 임대 방식으로 돌아왔다.

조선 22대 정조는 1776년 왕위에 오른 해에 규장각을 정식 국가 기관으로 발족하였다. 규장각은 조선 왕조의 왕실 도서관 겸 학술 연구 기관으로 출발하여 출판과 정책 연구의 기능까지 발휘한 특별한 기구이다. 이후 1782년에 강화도 행궁에 외규장각을 완공하여 왕실의 중요한 자료들을 옮겨서 보다 체계적이며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였다. 규장각에 보관하던 임금이 보던 어람용 의궤가 강화도로 옮겨진 것도 바로 이때이다. 이로써 외규장각은 규장각의 분소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되어 이곳을 규장외각(奎章外閣)’, 또는 외규장각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외규장각에는 어보(御寶), 교명(敎命), 어책(御冊), 어필(御筆), 의궤, 지도 등 왕실 관련 자료들이 집중적으로 보관되었으며, 철종 연간에 파악된 외규장각 소장 도서는 약 6천권 정도에 이르렀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의궤를 비롯한 340여 권에 달하는 도서를 약탈하였다. 외규장각 도서는 외규장각에만 있는 유일본으로 사료적 가치가 우수하며, 제작 당시의 비단 장정 유지본으로 미술적 가치도 뛰어나다. 현존하는 조선 시대 어람용 의궤는 298책으로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의궤는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라는 뜻으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 왕실의 중요한 의식과 행사를 진행한 후 그 전 과정을 기록하여, 글과 함께 그림을 넣어 쉽게 이해를 돕게 하였다.


외규장각 도서가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한 이후 의궤는 목록만 존재하였고 그 실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5년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 직원이었던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서였다. 1991년 서울대학교는 프랑스 정부에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고, 1992년에는 정부가 프랑스에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청하였다. 1993년 미테랑 대통령이 프랑스 고속 철도 TGV 수주를 위해 방한하면서, 양국 정상은 외규장각 도서를 상호 교류하고 대여한다는 원칙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반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우리 정부는 프랑스 정부에 국제법에 따라 약탈 국가유산을 반환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반환을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2010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서울 G20 정상 회담에서 프랑스와의 정상 회담 이후 외규장각을 5년마다 갱신 대여하는 것으로 합의하였고, 2011년 5월 환수가 완료되었다. 그러나 이 반환은 완전한 반환이 아니라 대여의 형식을 취한 것이어서 외규장각 도서의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가 가지고 있다.


“영조 정순왕후 가례도감 의궤”: 정비인 정성왕후와 사별한 영조가 3년 상을 마친 1759년(영조 35)에 15세 된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를 계비로 맞이하는 혼례식을 기록한 의궤이다. 영조가 정순왕후를 데리고 궁으로 가는 50면에 달하는 ‘친영반차도’가 실려 있는데 379필의 말과 1,29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크기는 47.3 cm x 33.6 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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