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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HOME 나눔 · 소통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시인 김광균 ( 金光均, 1914~1993)

1975년 “문학과 지성”에 시 ‘유무(有無)’, ‘영산(靈山)’ 등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이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쓰레기 치는 사람들’, ‘묘비명(墓碑銘)’, ‘나무 잎 하나’, ‘희망’ 등에서 평이한 언어와 명확한 구문(構文)으로 독자들과의 교감을 보다 가깝게 하는 면을 보였다. 시집으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아니다 그렇지 않다”, “크낙산의 마음”, “좀팽이처럼”, “물길” 등이 있다.

1914년 1월 19일,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송도 상고를 졸업하고 회사원으로 있으면서 틈틈이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1930년 ‘야경차’를 “동아일보”에 투고하였고, 1936년 “시인 부락”의 동인으로 참여하는 한편,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시 ‘대화’를 발표하였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설야’가 당선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39년 제1시집 “와사등”을 간행했는데, 이 시집 속에 ‘부두’, ‘여름’, ‘장미와 낙엽’, 그리고 그의 이미지즘적인 경향이 현저하게 드러난 대표작 ‘성호 부근’, ‘와사등’ 등의 초기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후 ‘뎃상’, ‘도심 지대’, ‘추일 서정’ 등의 주요 작품을 계속 발표하였다. 광복 후인 1947년 제2시집 “기향지”를 간행하였다. 


◀ 김광균 시비(서울 대학로 소재)(*)


김광균의 시 경향은 다분히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입고 있으나, 이상의 허무주의적 경향이나 초현실주의적 요소보다는 온건하고 차분한 회화적 이미지에 치중해 있다. 그는 서구 시의 정신 및 표현 기법을 의식하려 했으며, 한국 시들이 지녀 온 막연한 기분이나 정서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보다 구체적인 경험을 통한 선명한 이미지를 구현하려 하였다.


그의 작품은 소시민의 감각을 채색하여 회화적인 이미지로 나타나 있다. 선명한 수채화풍의 터치와 달콤한 애상을 곁들인 신선한 현대적 감각이 작품의 특색이다. 그는 시에 회화성을 도입한 점에서 한국시의 현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그의 시가 보여 주고 있는 세련된 비유적 언어, 그리고 시적 공간의 확충은 값진 수확이 아닐 수 없다.



그밖의 작품으로는 ‘강협과 나발’, ‘화속 화장’, ‘밤비와 보석’,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 ‘반가(反歌)’ 등이 있고, 평론으로는 ‘문학의 위기’가 있다.


 

6?25 전쟁 이후에는 사업가가 되어 문단과는 인연을 끊었으나, 1969년에 문단 고별 시집으로 “황혼가”를 간행하였다. 1993년 11월 23일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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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진은 한국관광공사가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4유형으로 개방한 '예술이 있는 추억의 골목길'을 이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