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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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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빅토르 위고 (Victor Marie Hugo; 1802 ~ 1885 )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로서 시인, 소설가, 극작가였던 빅토르 위고는 1802년 2월 26일 태어났다. 대표적 작품으로 “동방시집”, 고전적 연극 작법을 사용한 “크롬웰”, 장편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곱추)”, “레 미제라블”을 남겼다. 특히 1862년에 발표한 “레 미제라블”은 숭고한 인간애을 그린 대작으로 꼽힌다.

 19세기 전 기간을 살았던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제1 제정, 왕정 복고, 7월 혁명, 2월 혁명, 제2 공화정, 제2 제정, 제3 공화정 등 프랑스의 모든 정치적 변혁을 겪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젊은 시절에는 보수주의였다가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으로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적 지식인이 되었다. 그의 작품은 시집 20권, 희곡 10부, 장편 소설 10편, 논문집이 5권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량으로, 그의 창작 활동이 얼마나 왕성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빅토르 위고는 1802년 2월 26일 프랑스 동부의 브장송에서 태어나 나폴레옹 휘하에서 고급장교를 지낸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에스파냐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파리로 돌아온 후 파리의 코르디에 기숙학교에서 독서와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가, 1817년 15세에 아카데미가 주관한 시에 응모하여 상을 받고, 당시 대문호 샤토브리앙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1822년 첫 시집 “서정시집”을 발표한 이후 본격적으로 문학에 전념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825년 프랑스 왕실로부터 작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기사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이 무렵부터 여러 잡지에 문학 평론을 싣기도 하고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간의 문학 논쟁에 참여하면서 낭만주의 문학 이념의 초석을 다졌다. 1827년 희곡 “크롬웰”의 서문 발표를 통해 고전주의 문학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나서면서 낭만주의 작가들을 이끌었다. 또한 1829년 “동방시집”과 “사형수 최후의 날” 등을 발표하였다. 


1830년 그의 희곡 “에르나니” 공연을 둘러싸고 낭만파와 고전파 간에 문학 사상 유명한 ‘에르나니 싸움(에르나니 논쟁)’ 이 일어났을 때 적극적인 방어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듬해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노트르담의 꼽추)”를 발표하여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다졌다. 또한 그는 여러 시집 발표 이외에 “마리용 들로름”을 비롯하여 “왕은 즐긴다”, “뤼크레스 보르지아”, “마리 튀도르” 등 여러 편의 희곡을 연달아 집필하였다. 1841년에는 39세의 젊은 나이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1843년 그의 희곡 “성주들”이 혹평을 받은 데 이어, 그해에 결혼한 맏딸 부부가 센 강에서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후 위고는 10여 년간 거의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정치 활동에 깊이 관여하여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도주의자가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활동 결과 1845년 왕당파로 프랑스 국회 상원 의원이 되었고, 2월 혁명 이후에는 자유, 평등, 공화 체제를 위해 싸웠다. 1851년에는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하여 국외로 추방당하여,  벨기에를 거쳐 영국에서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였다. 


망명 기간에 그는 창작에 전념하여 시집 “징벌”, “명상시집”, “세기의 전설(제1집)”, 소설 “레 미제라블”, “바다의 노동자” 등 걸작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나왔다 .
1870년 나폴레옹 3세의 몰락과 함께 그는 공화주의 옹호자로서 파리 시민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파리로 돌아왔다. 그는 위대한 시인으로 영예를 누리며 비교적 평온한 만년을 보내면서 창작 활동을 하였다. 이 시기에 발표한 대표적 작품은 “두려운 해”, “세기의 전설”(제2집, 제3집), 소설 “93년” 등이 있다. 


말년에 위고가 살았던 파리의 엘로 거리는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빅토르 위고 거리’로 개칭되었다. 그는 1885년 5월 22일 83세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장례식은 파리 시민의 애도와 추모를 받으며 국장으로 치러졌다. 
오늘날 빅토르 위고의 문학은 전 세계인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소설은 1905년 "파리의 노트르담"을 토대로 제작된 ‘라 에스메랄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68편에 달하는 영화와 TV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1956년 앤소니 퀸 주연으로 제작된 ‘파리의 노트르담’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같은 소재가 1996년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으로 탈바꿈되기도 하였다. 런던에서 뮤지컬로 제작한 ‘레 미제라블’은 198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이래 15년 동안 장기 공연 중이고, 2012년에는 뮤지컬 형식으로 영화화되어 호평을 받았다. 


◀ 앤소니 퀸 주연의 '파리의 노트르담(노틀담의 꼽추)'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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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진(그림)은 한국정책방송 KTV가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보도자료 '다시 보고 싶은 고전 영화 <마부>, <노틀담의 꼽추>, <시네마 월드>'를 이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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