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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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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광고

1886년 2월 22일 한성순보의 후신인 한성주보 제4호 15, 16 두 면에 ‘덕상(德商) 세창양행(世昌洋行) 고백(告白)’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광고가 등장하였다. 24줄짜리 순 한문 광고였다.

1883년 인천이 개항하고 나서 인천으로 많은 서구 문물과 서구 무역상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중 독일의 세창양행은 1884년 지금의 인천 중앙동에 단층 양옥을 짓고 업무를 시작하였다. 세창양행은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홍콩을 중심으로 중국의 상하이와 톈진, 일본의 고베에도 지점을 두고 있던 규모가 큰 무역상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광고는 언제 등장하였을까? 1886년 2월 22일 한성순보의 후신인 한성주보 제4호에 ‘덕상(德商) 세창양행(世昌洋行) 고백(告白)’이라는 광고가 처음 실렸다. 제목 ‘덕상(德商) 세창양행(世昌洋行) 고백(告白)’에서 덕상은 독일 상인이라는 뜻으로, 독일은 한자로 덕국(德國)이라 하였기 때문에 덕국 상회를 줄인 것이다. 고백은 광고라는 말의 중국식 표현이었다.

 

광고의 내용은 세창양행이 우리나라에서 사려는 물품인 쇠가죽, 호랑이가죽, 여우가죽 등과 사람 머리털, 호랑이 발톱, 담배 등과 팔려는 물품인 자명종 시계, 뮤직박스, 서양 직물, 성냥을 나열하였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친절히 대하겠고, 정직한 상거래를 하겠으며 세창양행의 상표를 확인하고 물건을 산다면 잘못이 없을 것’ 이라고 밝혔다. 도안이나 사진은 없고, 제목과 내용이 모두 한문으로 된 이 광고는 당시 개항기 조선의 대외 교역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 세창양행에서 판매한 INDIGO BLUE 물감의 상표(추정)(*)


세창양행은 금계랍(키니네)과 바늘로 잘 알려진 회사였다. 키니네는 원래 말라리아 치료약이었지만 부인네들이 아기 젖을 뗄 때 애용되었고, 세창바늘은 끝이 쉽게 무뎌지거나 부러지지 않아 인기를 끌었다. 세창양행은 일제 초기까지 영업을 하다가 1914년 일본의 대독 선전 포고로 서울의 총영사관과 함께 폐쇄되었다.

 

세창양행은 1886년 7월 5일자 제23호까지 약 6개월간에 걸쳐 계속 광고를 게재하였고, 한성주보는 적자 운영이 누적되어 1888년 7월 7일 2년 6개월 만에 폐간되었다. 이후 1896년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한 뒤부터 광고가 정기적으로 게재되기 시작하였으며, 1910년 국권 피탈 후부터 10년간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우리말 신문으로 광고 매체 역할을 하였고, 19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이 발행되어 광고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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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진(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작성(인천시립박물관 소장)하여 공공누리 제4유형으로 개방한 '세창양행상표'를 이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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