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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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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 Charles-Pierre Baudelaire 1821. 4. 9.~1867. 8. 31. )

프랑스의 시인, 미술 평론가이다. 상징파의 선구자로 뛰어난 분석력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인간 심리를 탐구하였다. 대표작으로 시집 ‘악의 꽃’이 있다.

보들레르의 생애

182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환갑의 나이에 젊은 여인과 결혼한 그의 아버지는 한때 사제였으며,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화가이기도 하였다. 그가 6세 때 아버지가 죽자 이듬해 어머니는 육군 소령 자크 오피크와 재혼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글에 재능을 보였지만, 군인이었던 새아버지는 외교관이 되기를 바랐고, 그를 억압하였다. 그는 고등학교의 기숙생으로 다니던 중 품행 문제로 퇴학을 당하였다. 그러나 대학 입학 자격 시험(바칼로레아)에는 한번에 합격하였고, 부모에게 문학 지망을 선언하였다.

 

△1848년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보들레르


그는 파리 대학 법학부에 다니며 문학 친구들과 사귀면서 방탕한 생활로 많은 빚을 지고 궁지에 몰렸고, 가족들에 의해 인도로 보내졌으나, 항해 도중 큰폭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인도양의 섬에에서 체류하다가 9개월 만에 파리로 돌아왔다. 


는 1842년 성년이 되자 죽은 부친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으나, 멋쟁이(댄디) 생활을 하며 무분별하게 돈을 낭비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그의 시흥에 영감을 준 동시에 악연이 된 무명 여배우(흑인 혼혈녀) 잔 뒤발을 알게 되었고, 들라크루아와 쿠르베 등 많은 화가와 교류하며 그림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하지만 2년 만에 유산을 거의 탕진해 버리자, 금치산자 선고를 받았고, 이후 제한된 수입에 얽매인 채 가난과 고통으로 살았다.

 

24세 때 ‘1845년의 살롱’을 출판하여 미술 평론가로서 데뷔하였는데, 이후 그의 예술 비평은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어 문예 비평, 시, 단편 소설 등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에서 활약하는 한편, 1848년 2월 혁명에도 가담하였다. 방탕한 생활 속에서도 보들레르는 애드가 앨런 포의 작품을 발견하면서 지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는 만년에 이르기까지 5권의 뛰어난 번역을 완성하였고, 그에 대한 평론을 쓰는 일에 몰두하였다. 이 책들은 번역서로서 프랑스 산문의 고전이 되었다.

 

보들레르는 36세가 되던1857년에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첫 시집 "악의 꽃"을 출판하여 프랑스 문단은 물론 전 유럽 문단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 시집은 찬사와 함께 비난이 가해졌다. 외설과 신성모독제로 기소당하여 벌금과 시 6편의 삭제라는 판결을 받았고, 1949년 해제될 때까지 외설의 표본이 되었다.

1851년 ”악의 꽃“을 대폭 증보하여 개정판을 냈으나, 그의 인생은 말년까지 좌절감과 절망으로 불행하였고, 1862년 파산 선고를 받았다. 1866년부터 실어증과 마비 증세를 보이다가 1867년 8월 31일 4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보들레르의 미학과 시학

달팽이 기어다니는 진흙땅에 / 내 손수 깊은 구덩이를 파리라

거기 내 늙은 뼈를 편히 쉬게 묻어 / 물 속의 상어처럼 망각 속에 잠들리라

나는 유서를 꺼리고 무덤을 미워한다 / 죽어 부질없이 남의 눈을 바라보느니보다

내 차라리 산 채로 까마귀를 불러 / 더러운 뼈마디를 쪼아 먹게 하리라

오, 구더기! 눈도 귀도 없는 어둠의 빛이여 / 너 위해 부패의 아들, 방탕의 철학자

기뻐할 불량배의 사자는 오도다 / 내 송장에 주저 말고 파고들어

죽음 속에 죽은, 넋없는 썩은 살 속에 / 구더기여, 내게 물어라, 여태 괴로움이 남아 있는가.

                                                             - 보들레르, “악의 꽃” 중에서 ‘죽음의 기쁨’을 -

 

보들레르는그의 시집  “악의 꽃”에서 ‘죽음의 기쁨’을 노래하며, 악을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상황으로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악으로부터 미(美)를 끌어내는 영혼의 고뇌로 표현하였다. 이 시를 쓸 무렵 보들레르는 “살아 있다는 것은 말뿐이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죽었을 뿐만 아니라 넋조차 잃어버린 인간이다.”라고 절망적인 말을 하였다. 

 

“악의 꽃”은 그가 늘 강조한 대로 하나의 틀과 구조로 짜여져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개정판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초판에서 삭제된 6편을 제외하고 36편이 추가된 총 130편의 시가 실린 개정판은 우울과 이상, 파리 풍경, 술, 악의 꽃, 반항, 죽음 등 6부로 나뉘어 있다. 


그는 이 시집을 내면서 "이 끔찍한 책에다 나는 내 생각 모두를, 내 마음 모두를, 내 종교 모두를, 내 증오 모두를 집어넣었다."라고 하였다. 그의 시는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 차세대 상징파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가 죽은 지 10여 년이 지나서야 높은 문학적 평가를 받았다.

 

그의 시는 모두 그의 견해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결정체이며, 평론은 예술 작품의 본질과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원리에 대한 명상이다. 그는 진정으로 위대한 창조적 예술가라면 결국 모두 비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즉 예술가는 평론을 통해 자신의 시를 해설하고, 자신의 미학을 연장하여 시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불행한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롭고 고유한 영역을 발견하고자 하였고, 이 시도는 훗날의 현대시와 자유시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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