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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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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간도 협약 ( 間島協約 )

간도는 두만강 건너편 만주 일대의 개간지를 일컫는 것으로, 조선과 청의 국경 지대였는데 19세기 중엽 청과 영토 분쟁이 일어났다. 을사늑약으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일제는 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해 1909년 창과 간도 협약을 맺고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간도(間島)는 조선과 청 사이에 놓인 섬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보통 간도는 백두산을 경계로 서쪽으로 압록강 연안(서간도)과 두만강 연안 일대(북간도 혹은 동간도)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고조선, 고구려와 발해 땅이었고, 고려 때에는 윤관이 여진 정벌을 단행하고 9성 중 하나인 공험진을 설치한 지역이다.

이후 간도는 
오랫동안 미개척 상태로 남아 있다가 1712년 청의 강희제가 조선과 청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할 것을 제의하면서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졌다. 백두산정계비에는 ‘압록강과 토문강을 조선과 청의 경계로 삼는다’라고 되어 있다. 정계비를 통해 조선과 청은 국경을 확정하고 중립 지역을 서로 양분한 것이다.



◁백두산 정계비와 간도 위치: 백두산정계비는 1712년 조선과 청의 대표가 양국 국경을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국경으로 삼는다.’라고 확정하고 세운 비석이다. 그러나 조선은 토문강을 쑹화 강 지류로, 청은 두만강으로 달리 해석하여 훗날 간도 귀속 문제의 쟁점이 되었다.

 

 

 

 

 

청은 이후 봉금 정책을 실시하여 압록강에 이르는 변외 지구를 봉쇄하고 농민들이 그곳에 거주하거나 농사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그러나 1881년 청이 봉금 지역(이주 금지의 무인 공간 지대)을 해제해 중국인들의 간도 이주와 개간을 장려하면서 간도의 영유권 문제가 발생하였다. 청은 간도 지방에 살던 조선인들에게 나가달라 하였고, 조선에서는 관리를 파견해 조선 영토라 하였다. 간도 일대에 먼저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사람들이었다. 


두 나라는 여러 차례 교섭하였으니 협상은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조선 정부는 간도 주민에 대한 직접적인 관할권을 더욱 강화해 나갔다. 
대한 제국이 수립되면서 정부는 간도 해결 문제에 적극 나섰다. 대한 제국은 1897년 이미 압록강 대안(對岸) 지역 즉 서간도 지역에 서상무를 서변계 관리사로 임명하여 이 지역의 한인을 보호한 데 이어, 1900년경 평안북도에 편입시켜 관찰사 이도재가 이 지역을 각 군에 배속시키고 충의사를 조직해 이주민을 보호하였다, 


또한 두만강 이북 지역의 동간도, 북간도는 1902년 이범윤을 간도 관리사로 임명해 사포대를 조직하게 하여 러·일 전쟁 발발시까지 간도의 한인들을 보호하였고, 1903년 함경북도에 편입시켜 우리 영토임을 증명하였다.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 제국으로부터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7년 8월 간도 파출소를 용정촌에 설치해 간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청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하여 간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1909년 9월 4일 청과 ‘간도 협약’을 체결하여, 간도의 철도 부설권과 탄광 개발권 등 각종 이권을 받는 대가로 간도를 청에 넘겨주었다. 
이로써 우리 민족이 100년 이상 피땀 흘려 개척한 간도는 우리 영토에서 사라져 갔다. 일제는 통감부 설치 이후에는 간도에 파출소를 두어 관리해 왔으나, 간도 협약 이후 간도 파출소를 폐쇄하는 대신 일본 총영사관을 두어 한국인의 민족 항쟁을 방해하였다. 이 때부터 간도 지방에 살던 우리 민족은 청에 세금을 내고 청 관리의 통제를 받는 청의 실효 지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간도 협약은 국제법상 주권을 침탈당한 국가가 맺은 조약이므로 무효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도 협약의 무효 확정시 협약 이전 상태로 되돌아감으로써 한·중 간 영유권 확정을 위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1962년 북한이 중국과 비밀리에 국경 조약을 체결하여 간도 영유권을 포기하였지만, 비밀 조약인 이상 남한에는 영향력이 없으며, 간도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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