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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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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케네디ㆍ닉슨, TV 토론

1960년에 치러진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 간의 토론이다. 이날의 TV 토론은 케네디를 대통령이 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케네디가 TV 토론회 후광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닉슨과 케네디의 TV 토론 이후 텔레비전은 정치 영역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은 그 자체가 지배력(Dominating force)이었다. 케네디와 닉슨 토론 전만 해도 오락 매체인 TV에서는 정치가 별로 주목받지 못하였으니, 그 이후 TV 토론은 선거 운동 기간에 가장 뜨거운 대결의 장이 되었다."    - 샌더 베노커(전 NBC 기자)-


1960년 9월 26일. 미국 시카고 시간으로 밤 8시 30분, 3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후보였던 부통령 닉슨과 민주당 후보였던 상원의원 케네디의 TV 토론이 열렸다. 미국 대통령 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라디오 토론회를 통해 입지를 다져온 닉슨의 승리를 낙관하였다. 

 

케네디와 닉슨의 TV 토론케네디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유창한 언변으로 건강함과 자신감을 부각시킨 반면,  닉슨은 땀을 흘리고  “나 역시(me too)”만을 연발하며 말을 더듬는 등 허약한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 닉슨은 토론 내내 주로 케네디만을 응시함으로써 시청자들과 거리감을 두었으나, 케네디는 만면에 웃음띤 모습으로 카메라, 즉 국민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였다. 


9월 26일부터 10월까지 총 4회에 걸쳐 진행된 토론회는 미국의 3대 TV와 라디오 전파를 타고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닉슨은 8년간 부통령 후보로 얼굴이 많이 알려진 데다 베테랑 정치인이었다. 닉슨은 자신의 말 재주를 신뢰하고 있었다. 대면 토론에서 닉슨은 거의 진 적이 없었다. 닉슨은 토론 연습을 거절하였다. 그에 비하면 케네디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인이었다. 케네디는 스태프가 준비해 준 예상 질문을 몇 시간에 걸쳐 답변하며 열심히 준비하였다. 


토론이 시작되자 닉슨은 풍부한 행정 경험으로 케네디를 논리에서 압도하였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시선은 수려한 외모의 젊고 똑똑한 케네디에게 매료되었다. 늙고 초췌해 보이는 닉슨과 달리 40대 후반의 케네디는 건강한 얼굴에 젊음이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이날 라디오 청취자는 나름대로의 논리로 토론을 끌고 간 닉슨에게 후한 점수를 매겼지만, TV는 논리보다 감성과 이미지를 요구하고  있었다. 


1960년 11월 8일 미국 대선 결과 치열한 접전 끝에 케네디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도로서  제3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TV 토론은 미디어 정치의 신기원을 이룬 선거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TV 매체의 활용과 연출도 정당과 공약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한 자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방송 토론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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