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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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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보어 전쟁 (Boer War )

아프리카에서 종단 정책을 추진하던 영국과 당시 남아프리카 지역에 정착해 살던 네덜란드계 보어인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1880년 제1차, 1889년 제2차 보어 전쟁이 일어났는데, 일반적으로 제2차 보어 전쟁을 보어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가장 큰 규모로 치러진 전쟁이었다.


제1차 보어 전쟁(1880 - 1881)

남아프리카에 처음 이주한 백인들은 네덜란드인이었다. 164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희망봉 지역을 점령한 이후 네덜란드 식민지의 규모는 점점 커져 1707년경에는 회사 직원 700명 외에 2000여 명의 정착인들이 내륙 깊숙한 곳까지 진출한 상태였다. 보어인은 바로 남아프리카에 사는  이 네덜란드계 백인들을 일컫는다.


보어인들은 19세기에 들어 아프리카로 진출한 영국과의 세력 다툼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영국인에게 밀려나기 시작한  보어인들은 케이프타운 일대를 내주고 케이프 동북쪽의 미개척지로 이주하여 그곳에 오렌지 자유국과 트란스발 공화국을 세워 정착하였다.

그러자 영국인들도 동쪽 해안에 나탈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영역을 확대시키고, 이들 국가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자, 1880년 말 제1차 보어 전쟁이 발생하였다.


이 때의 전쟁은 소규모 국지전으로 전개되었으며, 1881년 영국군이 마주바에서 패배하자 평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종전되었고, 평화 조약에 따라 영국은 1852년과 1854년에 세워진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이후 트란스발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오렌지 강변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이를 차지하려는 영국의 내정 간섭이 노골화되었다.


제2차 보어 전쟁(1899 - 1902)

트란스발 공화국에서 풍부한 금광맥이 발견되자 영국의 광산 기술자 수 천명이 케이프 식민지에서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영국인들은 노골적으로 트란스발 내정에 간섭하였다. 보어인들은  영국인들의 참정권을 거부하며 맞섰고, 금 채굴에 관해서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다.

이에 영국인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에 불만이 고조되었고, 급기야는 영국 정부가 완전하고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요구하는 최후 통고를 보냈다. 하지만 트란스발 대통령은 그 전에 48시간 이내에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 전 지역에서 영국군과 영국인의 퇴거를 요구하는 최후 통첩을 하였다. 


1899년 10월 11일 보어군은 영국군이 점령하고 있던 나탈 주를 침공하였고, 영국은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 두 나라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전쟁이 시작되자 보어인들은 대규모 게릴라전을 펼쳤다. 전쟁 초반 보어인들의 지형에 익숙한 게릴라전은 효과를 거두었다.

열세에 있던 
영국은 1900년  대규모 증원군을 남아프리카에 파견하였다. 1900년 말 영국군은 포위된 도시들을 탈환하고 철도 수송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등 전세가 차츰 바뀌었다. 하지만 보어인들은 끈질기게 영국군의 보급로 및 통신망을 공격하는 산발적인 게릴라전으로 맞섰다. 


한편, 영국군은 게릴라전을 벌이던 보어군 지배 지역인 보어인과 아프리카인의 농장들을 초토화시키는 전술을 감행하였다. 이때 보어인과 아프리카인의 농장들과 가옥이 불탔으며, 삶의 터전을 잃은 보어인들은 강제수용소에 격리되었다. 이 수용소에서 보어인 여자들과 아이들이 겪은 비참한 생활은 전 세계의 분노를 샀으며,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혹한 처우로 비위생적인 수용소에서 죽어갔다,

 

이후에도 보어 의용군은 활발하게 활동하였지만, 결국 마지막 의용군이 항복함으로써 1902년 5월 31일 두 나라는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 전쟁을 종결되었다. 이 전쟁의 결과로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의 영토는 영국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09년 영연방 내의 자치령으로 독립하였고, 1961년에는 자치령에서 벗어나 독립하였다.


그러나 영국은 이 전쟁을 통해 세계 여론의 공격을 받았고, 국제적으로도 '영광의 고립' 정책을 버려야 하였다. 국내에서도 반전 운동이 고조되어 자유당의 로이드 조지는 이 때 제국주의 정책의 반대론자로 활동하였으며, 노동당 결성이 촉진되었다. 또한 남아프리카에서도 보어인의 생활 부흥을 위해 보조금을 내주고 그들의 자치를 인정해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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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인물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