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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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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 ( 光州學生抗日運動)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되어 이듬해 3월까지 전국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시위 운동이다. 학생의 날은 항일 학생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서 학생들에게 자율적인 역량과 애국심을 함양시키기 위해 제정된 정부가 제정한 기념일이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전남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 기차 안에서 광주중학생(일본인)과 광주고보생(조선인) 사이의 충돌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인 중학생이 광주여자고보 박기옥 등 여학생들의 댕기꼬리를 잡아당기면서 희롱하자, 이때 개찰구를 나오던 박기옥의 사촌 남동생 광주고보 2년생 박준채와 싸움이 일어났다. 싸움은 광주고보와 광주 중학 생들의 패싸움으로 번졌고, 일본 경찰은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을 편들고 조선인 학생들을 구타하였다.


이 사건은 결국 나흘 뒤인 11월 3일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의 집단적 충돌로 발전하였다. 한·일 학생들의 충돌에 일본이 극히 편파적 대응을 하자, 이에 분노한 광주 시민과 학생들은 광주 시가지를 돌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신간회에서는 사태를 조사하고 학생 투쟁 지도 본부를 설치하여,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지원 활동을 하였다.


11월 12일 광주 학생들은 제2차 봉기를 하였다. 일제의 엄격한 보도 통제에도 불구하고 광주 학생 시위 사실은 전남 지역과 서울, 그리고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 운동은 1930년 3월 초까지 전국으로 확산되어 계속되었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3·1 운동 이후 발생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항일 운동이었다.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당시, 현지를 방문하고 진상을 조사하여 일제의 부당한 처사를 비판한 독립운동가 김병로 선생(*)



11월 3일 ‘학생의 날’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기점으로 하여, 항일 학생 운동의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의미에서 1953년 10월 20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기념일로 제정되었다. 1970년대 유신 체제하에서 학생들의 반독재 만주화 운동이 거세지자 1973년 3월 30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6615호)을 공포하여 학생의 날을 폐지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 다시 학생의 날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져, 1985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학생의 날’은 문교부(지금의 교육부)가 주관하는 정부 행사로 다시 인정되었다. 그리고 2006년 11월 국가기념일인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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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진은 독립기념관이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보도자료 '2월의 독립운동가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선생'을 이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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