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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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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5·10 총선거

유엔의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5·10 총선거는 21세 이상 성인 남녀의 투표권을 인정한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였다.

1947년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미국과 소련의 입장 차이로 결렬되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유엔(UN)에 상정하였다. 유엔 총회에서는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의 총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하기로 의결하였다. 유엔 총회의 결정에 따라 1948년 1월, 한반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서울에 들어왔다. 그러나 소련과 북한의 반대로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북한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유엔 총회의 임시 위원회(소총회)는 우선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임시 위원단은 1948년 5월,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남한만의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이에 김구 등은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민족 분단의 길이며, 민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 경고하며 반대하였고, 좌익 세력은 선거일 전후로 격렬한 총선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반면,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은 총선거를 환영하며 선거 준비에 힘썼다.

 

1948년 5월 10일, 예정대로 남한에서는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감시 아래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총선거에는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 그리고 중도 세력이 참가하였다. 김구와 김규식 등 남북 협상 참가 세력과 일부 중도계 인사들은 불참하였고, 좌익 세력은 선거를 거부하였다.


5·10 총선거는 21세 이상 성인 남녀의 투표권을 인정한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였다. 그리고 직접, 평등, 비밀, 자유 원칙에 따른 민주 선거였다. 총선거는 북한 지역에 배정된 100석을 남겨두고, 남한 지역 총 200석의 의석 중에서 제주도의 두 곳을 제외한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이 선출되었다.

 

5·10 총선거로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제헌 국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국회의원 당선자 가운데에는 무소속이 가장 많았다.  이승만은 우익 성향의 무소속 의원,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한국 민주당을 끌어들여 다수의 지지 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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