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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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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일본의 교과서 기술에서 드러나는 과거사 인식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아 종종 지적되어 왔다. 특히 고대사와 근현대사와 관련한 한·일 관계에 대한 서술과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미화와 왜곡은 주변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타이완, 러시아 등 주변의 여러 나라와도 영토 분쟁을 하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겪은 일본은 1980년부터 급속히 우경화되었다. 일본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처음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1982년이다. 1982년 7월 일본 문부성이 1983년 4월부터 사용될 일본의 초·중·고교 역사교과서 내용 가운데 한국관계 부분을 크게 왜곡한 사실이 밝혀져 한·일 양국간의 외교 문제로 확대되었다.

 

△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공청회(1982. 07. 30.)


문제의 교과서들은 한국의 고대사, 근대사, 현대사를 모두 왜곡 기술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의 한국 침략을 ‘진출’로, 외교권 박탈과 내정 장악을 ‘접수’로 미화하고, 토지 약탈을 ‘토지 소유권 확인, 관유지로의 접수’로, 독립운동 탄압을 ‘치안 유지 도모’로 호도하였다. 또한 조선어 말살 정책과 신사 참배 강요를 ‘조선어와 일본어를 공용어로 사용’, ‘신사 참배 장려’ 등으로 왜곡하는 등 일제 침략사를 포함한 현대사의 왜곡이 가장 심각하였다.


국내 여론은 이를 강력 비판하고 시정을 촉구하였으며, 한국 내에서는 반일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고, 7월 30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공청회를 열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왜곡된 부분의 시정을 관철시키기로 방침을 세우고 한·일 경제 협력 회담 취소, 시정을 요구하는 비망록 전달 등으로 강경 대응을 하고, 마침내 8월 26일 일본 측으로부터 ‘교과서의 문제된 부분을 정부 책임 하에 시정’ 하겠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부분 시정은 아직까지도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아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 역사 왜곡 망언 규탄 대회(1995. 6. 9.):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일본 정치인 와타나베 미찌오의 역사 왜곡 망언에 대한 규탄 대회 모습이다.


일본의 일부 우익 정치 세력은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며, 일제의 식민 지배 덕분에 한국의 근대화가 가능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에는 독도 영유권 주장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약으로 내세운 고이즈미가 총리로 당선되면서 일본의 우속화는 가속화되었다. 일본 문부성은 그동안 꺼려오던 우익의 왜곡된 역사관을 반영한 후소샤(20010와 지유사(2009)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 시켜, 주변 국가는 물론 일본 내부의 반발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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