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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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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조명하 ( 趙明河, 1905 ~ 1928)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1928년 타이완에서 히로히토 일왕의 장인이자 일본군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를 짤러 상처를 입혔다. 그는 현장에서 붙잡혀서 그 후 사형되었으며, 이때의 부상으로 구니노미야는 이듬해 1월 사망하였다.

조명하는 1905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신천군 군청에서 일하던 중 독립운동에 뜻을 품었다. 당시에는 안중근, 김구를 비롯한 황해도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이 많았는데, 특히 1926년에 일어난 송학선의 금호문 사건(조선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학업과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독립운동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1926년 일본에 도착한 조명하는 오사카에서 공장 직원, 상점 졈원으로 일하면서 오사카 상공 전문학교 야간부를 다니며 고학하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삼엄한 감시와 함께 경제적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가기로 마음먹고 1927년 11월 중간 기착지로 타이완에 잠시 머물며, 타이중 시의 찻집에서 잃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 갔다.

 

당시 일본은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산둥 성 출병을 준비하고 있었고, 타이완에도 많은 일본군을 배치하고 있었다. 그 무렵 조명하는 히로히토 국왕의 장인이자 일본군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가 타이완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을 검열하기 위해 이곳에 온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조명하는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칼 쓰는 법 등을 익히며 준비하였다.


1928년 5월 14일 타이중 시에서 구니노미야의 타이완 방문 환영식이 열렸다. 조명하는 독을 바른 칼을 들고 환영 군중 속에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 조명하는 구니노미야를 태운 무개차가 모퉁이를 돌기 위해 속도를 줄이는 순간 차에 뛰어들어 독이 묻은 단검을 구니노미야에게 던졌으나, 독검은 그의 왼쪽 어깨와 목을 스쳐 가벼운 상처를 입혔다. 조명하의 의거는 일본 당국의 보도 통제로  한 달 후에 신문에 보도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조선 총독 야마나시 한조가 사임하였고, 구니노미야는 이 때 입은 상처로 이듬해 1월 사망하였다.


조명하는 그 자리에서 주변에 있던 일본군에 체포되엇고, 그 순간에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조명하는 타이중 경찰서로 압송되어 취조를 받았고, 6월 14일 타이베이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결국 조명하는 7월 18일 사형 선고를 받은 뒤 24세의 나이로 10월 10일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그는 순국 직전에 ”조국의 광복을 못 본 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조명하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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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진은 독립기념관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시어록비: 조명하(趙明河 : 1905 ~ 1928)'를 이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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