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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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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리총 금동 신발바닥 ( 飾履塚 金銅飾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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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신발의 등장으로 경주 노동동 126호 고분의 이름은 식리총(飾履塚)이라고 붙여졌다. 즉, 식리(飾履)가 신발이라는 뜻이다. 이 금동 신발은 3매의 금동판으로 이루어졌으며, 앞판과 뒤판이 측면에서 결합되는 전형적인 신라 금동신발 제작 방법과는 다른 백제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시대: 신라 시대(5세기)

-출토지: 경북 경주시 식리총

-크기: 길이 32.0cm

 

신라 무덤에서 확인되는 신발은 대개 금동신발이며, 대략 27켤레 정도 확인되었습니다.

황남대총(남분, 북분), 천마총,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식리총과 같은 큰 봉분을 가진 무덤뿐만 아니라, 경주 주변 지역인 양산, 대구 달서, 의성 탑리의 무덤에서도 금동 신발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금동신발은 무덤에 매납된 다양한 황금장신구들과 마찬가지로 피장자의 정치?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위세품(威勢品)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금동신발은 신라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확인됩니다.


고구려 금동신발은 집안 지역의 무덤인 우산묘구, 마선묘구, 칠성산묘구에서 확인되며, 주로 신발 바닥면만 남아 있고 바닥에 금속제 못을 박아 넣는 특징이 보입니다. 백제 금동신발은 백제의 최상급 무덤에서 약 14켤레 정도 확인되었습니다.

신발의 제작 방법을 살펴보면 신발의 좌우 측판이 앞과 뒤에서 각각 결합되고 바닥에는 금동 못이 박혀 있으며 凸자무늬, 용무늬, 능형무늬, 거북등무늬, 초화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베풀어져 있습니다.

최근 고창 봉덕리에서 확인된 금동신발에는 용무늬, 사람얼굴에 새의 몸을 한 가릉빈가 무늬, 고구려 벽화 고분에서 확인되는 역사상(力士像), 봉황과 같은 길상조(吉祥鳥) 등의 무늬가 6엽의 연꽃무늬와 어우러져 맞새김되어 있습니다.

 

이 유물은 1924년 경주 봉황대 남쪽의 식리총(飾履塚)에서 출토된 신발바닥입니다. 좌우대칭인 옆판 2매와 바닥판 1매로 이루어졌는데, 현재 바닥판만 남아 있습니다.

다른 신발과는 달리 주조기법으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얇은 금속판을 놓고 망치나 끌과 도구로 두드려 도드라지게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왼쪽은 연꽃무늬, 가운데는 마주보고 잇는 새무늬, 오른쪽은 가릉빈가(극랒라 불리는 새)무늬이다.


바닥 가장자리에 2줄의 구슬 무늬가 둘러져 있고 그 안에 1줄의 불꽃 무늬, 그 안으로 11개의 연꽃무늬와 거북등무늬가 일정하게 배치되었습니다. 거북등무늬 안에는 귀면, 쌍조문, 새, 사람얼굴에 몸이 새인 동물, 기린, 날개 달린 물고기 등이 장식되었습니다.

이러한 무늬들은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의 서수 무늬나 연꽃무늬와 같은 불교적인 요소가 복합되어 있어 당시 복합적인 내세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거북등무늬는 육각형이 연속적으로 붙어 있는 것으로 5~6세기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서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중국에는 동한 말기에 도입되었고, 특히 북위에서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연계 교과서 : 중등 > 역사 > Ⅱ. 삼국의 성립과 발전 > 3. 삼국과 가야의 문화와 대외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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