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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HOME 자유학년 · 창체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한강 인도교 ( 漢江人道橋)

한강 위에 놓인 최초의 인도교로, 1916년 3월에 착공하여 1917년 10월에 준공한 교량이다. 1984년 제1 한강교가 한강대교로 개칭되었다.

한강에 다리가 가설되기 이전에는 나룻배가 강을 건너는 유일한 교통 수단이었다. 이후 1897년 경인 철도 개통과 함께 철교를 착공하여 1900년 한강에 처음으로 한강 철교가 가설되었는데, 현재 경인선, 경부선 등의 열차가 이용하는 교량이다. 그 후 1917년 10월 7일 최초의 한강 인도교가 준공되었다. 바로 지금의 한강대교로 사람이나 자동차가 다니도록 놓은 다리이다. 한강대교는 용산구 이촌동에서 동작구 본동을 잇는 교량으로 서울에서 남쪽 방면의 노량진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이 다리는 여러 차례 공사를 통해 규모가 커졌고, 1936년 현재의 타이드 아치(tied arch) 형식으로 개축되었다. 이것이 완성된 당시 교통상의 편익은 물론이고 서울의 큰 명물이 되었다. 
그후 한강 인도교는 6·25 전쟁 발발 사흘 뒤인 1950년 6월 28일 폭파되었다. 인도교 폭파는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서울에서 철수하던 한국군의 작전상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과 차량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인도교의 중간 부분이 강으로 폭삭 내려앉았다. 이어서 철교도 무너져 내렸다. 


한순간에 500명에서 800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폭발로 죽거나 강에 떨어져 희생되었다. 성급한 폭파 사건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거세지자 군은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폭파의 실무 책임자인 최창식 공병대장에게 총살형을 내렸다. 그는 1962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강 인도교 복구 준공식(1958. 5. 16.) 


한강 인도교는 1957년 1월부터 복구공사에 착수하여 1958년 5월 16일 한강 인도교 복구 공사가 완료되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준공식에 참석하였다. 한강인도교의 복구는 그 당시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복구된 한강 인도교를 보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운집하기도 하였다.


△서울 한강 인도교에 운집한 사람들(1958. 5. 16.) 


제1 한강교라고도 불렸던 이 다리는 서울의 인구와 교통량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다리가 필요하게 되자, 1979년 1월 4일 다리의 폭을 20 m에서 40 m로 늘리는 확장 공사에 착수, 1981년 12월에 준공하였고, 그 결과 쌍둥이 교량으로 탈바꿈되면서, 이름도 ‘한강인도교’에서 ‘한강대교’로 개칭되었다. 이 교량은 건설부 국도 1호선의 한강 횡단 교량으로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관문이며, 우리 민족과 희비애락을 함께 해온 역사의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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