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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아라비아 지역에서 아랍 연합 공화국과 신생 국가 이스라엘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국제 연합이 영국령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할을 제시하자 아랍 측이 이를 거부하고, 이집트, 시리아, 트란스요르단, 레바논, 이라크와 몇몇 아랍 국가들의 지원 하에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전쟁은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이 지역이 이스라엘, 이집트, 트란스요르단에 의하여 분할되는 결과를 낳았다.
아랍, 이스라엘 분쟁의 역사적 배경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1세기경 모세가 이집트에서 헤브라이인들을 이끌고 나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였다. 그 이후 이스라엘과 유대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1세기경 독립 전쟁을 일으켰지만 로마에 패하였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전 세계를 떠도는 유랑 민족으로 전락하였다.
이후 유대인들은 시오니즘(유대인 조국 재건 운동)을 앞세워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립 국가 건설을 추진하였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을 치르던 영국이 미국 내 유대인들의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는 이른바 밸푸어 선언을 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오는 유대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아랍인들은 636년 예루살렘을 손에 넣었으며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였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건국 전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팔레스타인에는 예로부터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함께 있는 복잡한 종교적 지역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전 세계로부터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었다. 유대 난민의 대량 유입으로 분쟁이 격화되자, 이 지역을 신탁 통치하고 있던 영국은 분쟁의 해결을 국제 연합에 위임하였다. 1947년 11월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을 아랍과 유대의 양 국가에 분할하고 유대 인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의 56%를 제공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전쟁의 발발과 전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땅은 유대인의 탄생지이다. 여기서 최초로 국가를 만들었고 책 중의 책(성경)을 세계에 전하였다. 우리는 이곳에 이스라엘이라는 유대 인 국가의 설립을 선언한다.” 텔아비브 미술관에서 유대 국가 건국 위원회 의장 벤구리온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였다. 독립 선언 직후 미국과 소련은 이스라엘 건국을 승인하였다.
△ 이스라엘의 건국(왼쪽),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언한 다비드 벤구리온(오른쪽): 팔레스타인 지방에 주둔하던 마지막 영국군이 철수한 1948년 5월 14일 벤구리온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였다. 벤구리온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대인들의 시오니즘 운동을 이끌었으며,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영국군이 철수하고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이날이 ‘재앙의 날’이 되었다. 이틀 뒤인 5월 16일 이집트를 비롯한 트란스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이집트, 예멘 왕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7개국으로 구성된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진입함으로써 제1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 초기의 전세는 군사적으로 우세한 아랍 연합국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됨에 따라 아랍 진영 내에 전쟁 수행과 더불어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되면서 행동 통일에 균열이 생겼다. 특히 전쟁 초기 제2차 세계 대전 때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과 소련이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였는데,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에 압력을 넣어 이스라엘에 성능 좋은 신무기 공급을 주선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열을 정비한 이스라엘의 역공으로 아랍 국가들은 패배를 반복하였다. 이에 제1차 중동 전쟁은 1948년 11월 6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휴전 결의 채택으로 일시 중지되고, 마침내 1949년 2월 14일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휴전 협정을 체결하고, 3월 22일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휴전 협정을 체결하였다. 4월 3일에는 이스라엘-요르단, 7월 20일에 이스라엘-시리아가 휴전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제1차 중동 전쟁은 종결되었다.
전쟁의 영향
제1차 중동 전쟁 후 이스라엘의 영토는 확장되었다. 과거 유엔 분할안에 의한 이스라엘의 영토 크기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56%이었으나, 휴전 후 이스라엘-아랍 간의 국경 재조정은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어 팔레스타인 영토의 80%(2만 662㎢)를 확보하였다. 결국 아랍 측에게 남은 팔레스타인 영토는 20%에 불과했는데, 트란스요르단이 점령한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를 비롯한 요르단 강 서안 지역과 이집트 정부가 점령한 가자 지구를 의미한다.
제1차 중동 전쟁의 아랍 측 패배는 약 9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대이동을 초래하였고, 그들은 피란민으로서 인접 아랍 제국들에 분산되었으며, 유엔 난민 구제 사업 기관의 구제 대상이 되었다. 아랍 국가들의 패배는 일부 아랍 국민들에게 정치적 각성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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