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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1 (김형종) 09개정
HOME 자유학년 · 창체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달력 속에서 만나는 역사 속 오늘! 달력을 넘기면서 지나간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4·19 혁명

1960년 3·15 부정 선거와 마산 상고 김주열 학생의 사망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 .1960년 4월 19일, 이승만의 자유당이 벌인 3·15 부정 선거에 학생과 시민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독재 정권을 물리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이다.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서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갑자기 사망하여 이승만의 당선은 거의 확실해졌지만, 정부와 야당은 이승만의 후계자인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부정 선거를 저질렀다(3·15 부정 선거). 이 소식이 알려지자 선거 당일부터 마산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발생하였다. 더욱이 4월 11일에 시위 과정에서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진정한 민주 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 들자.’라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한 뒤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가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당하였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학생과 시민이 4월 19일 총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 정권 타도’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를 벌이는 학생과 시민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4·19 혁명 희생자 합동 위령제


4월 23일, 서울시는 4·19 혁명 희생자 합동 위령제를 진행하였다. 학생들은 이 위령제를 ‘어용 위령제’라 부르며 반발하였다. 계엄군의 진압으로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던 시위는 정부가 별다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자 다시 한 번 불붙게 되었다. 4월 25일에는 대학 교수들이 이승만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국 선언을 발표하고 시위에 동참하였다. 학생과 시민의 저항이 거세지자, 결국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은 일가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4·19 혁명).  

 

4·19 혁명은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의 12년에 걸친 장기 집권이 막을 내리고, 장면 내각을 출범하게 한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또한 학생과 시민의 힘으로 부패한 독재 집권을 무너뜨린 민주주의 혁명으로, 이후 전개된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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