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는 혁명의 성공으로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섰다. 카스트로는 1960년 8월 쿠바 내 미국을 비롯한 외국 자본을 몰수하고, 1961년 1월에는 미국과의 외교를 단절하였다. 그리고 4월 16일 혁명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선언함으로써 공산화가 진행되었다. 이에 쿠바는 미국의 눈엣가시가 되면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릴 침략 공격을 계획하였다.

1961년 4월 17일 새벽,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동남쪽으로 200여 km 떨어진 피그 만에 1500여 명의 무장 병력이 상륙하였다. 이 병력은 미국 CIA가 주도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 인들을 모집해 군사 훈련을 시킨 후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투입한 것이었다. 미국은 침공을 시작하면 쿠바 민중이 카스트로 정권에 반대하여 봉기하면서 그들을 환영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반란 상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망명군은 쿠바군의 집중 공격으로 사흘 만에 200여 명이 사망하였고, 1200 명 정도가 포로로 잡혔다. 

이 사건은 전임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계획을 수립하고, 1961년 막 취임한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 군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실행을 승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은 처음부터 무모함과 실패 가능성이 높았다. 우선 기습 작전처럼 꾸몄지만 이미 정보는 사전에 노출되어 있었고, 침공이 이루어지면 쿠바 민중이 봉기할 것을 예상하여 최소한의 병력만 보냈으나 이는 오판이었다. 또한 상륙 지점인 피그 만은 늪지대여서 상륙 작전을 펼치기에 부적합 곳이었다. 미 공군과 해군은 상황 판단을 잘못하는 바람에 명령 전달이 늦어지며 오지 않았다

피그만 침공 사건은 미국으로서는 국제적 망신이었다. 자유 진영의 수장격이었던 미국이 조그마한 나라 쿠바에 대해 비밀 침공을 계획한 것 자체도 부끄러운 일인데다, 침공군이 쿠바군에 참패하여 군사 대국의 체면이 여지없이 깎였다. 이에 대한 비난은 갓 취임한 케네디 대통령에게 쏟아졌다. 케네디 대통령은 TV 앞에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였고, 도덕성을 내세운 그의 정치적 지도력은 타격을 입었다.

이에 반해 피그만 침공 저지를 계기로 카스트로는 그의 정권을 더욱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포로 몸값으로 6000만 달러 상당의 식품과 의약품을 미국으로부터 챙겼다. 쿠바는 이후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하고, 1962년 소련의 핵미사일을 끌어들임으로써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초래하였다.

1972년 예일대 어빙 제니스 교수는 케네디 행정부의 쿠바 피그만 침공 실패 등을 분석하면서 ‘집단 사고(groupthink)’라는 이론을 창안하였다. ‘집단 사고’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밀한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경우, 구성원들이 반대 의견을 억제하여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경향을 뜻한다. 당시 두뇌 집단이라 불리던 케네디 행정부는 대부분 하버드대 출신의 동문들로, 높은 친밀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 너무나도 쉽게 한 방향으로 모아졌다는 것이다. 훗날 케네디는 “내가 그토록 어리석었단 말인가.”라고 하며 가슴을 쳤다고 한다. 대표적인 집단 사고의 오류로 미국의 피그 만 침공 사건,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 등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