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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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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싸운 백년 전쟁 당시 프랑스 칼레시를 구한 영웅적 시민 6명의 기념 조각품이이다. 칼레에서 벌어진 사건을 소재로 하여 오귀스트 로댕은 '칼레의 시민'이라는 사실주의적·상징주의적 작품을 남겼다. 또한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는 로댕의 이 조각 작품에서 감명을 받아 백년 전쟁에서 있었던 역사적 일화를 근거로 1914년 3막 희곡 '칼레의 시민'을 발표하였다.


<사진 출처: 알라딘>

-작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

-제작 연대: 1884~1886년

-재질: 청동 주조

-크기: 231 x 245 cm

-소장처: 프랑스 파리 로댕박물관

 

6명의 시민이 목에 밧줄을 감고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사형장으로 걸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중앙의 고개를 숙이고 죽음에 순응하는 자세로 걷고 있는 노인이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이고, 그 오른쪽에  비장한 모습으로 영국 왕에게 건네줄 칼레 성의 열쇠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장 데르이다. 

맨 앞 줄의 피에르 드 위상은 오른손을 위로 쳐들고 걸어가면서 뒤따라 오는 동생 자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채 고통스럽게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우는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앙드리위 당드르이고, 왼쪽에 서 있는 장 드 피엥스는 좀더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다. 


백년 전쟁 초기인 1347년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의 항구 도시 칼레는 영국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한 칼레 시민들은 시민군을 조직해 1년 가까이 영국군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항복하였다.

오랫 동안 지속된 이들의 저항에 격노한 영국 왕은 칼레 시민들을 모두 몰살하려 하였다. 칼레 시의 항복 사절단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였다. 에드워드 3세는 항복 조건을 내걸었다.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대신 시민들 중 6명을 뽑아 와라.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해 처형하겠다.”

 

광장에 모여 소식을 전해들은 칼레의 시민들은 한편으로 기뻤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6명을 어떻게 뽑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칼레의 최고 갑부 외수타슈 생 피에르를 비롯한 상인, 법률가, 부유한 귀족 등 6명이 자원하였다.

다음날 아침 시민 대표 6명은 점령자의 요구대로 목에 밧줄을 걸고 맨발에 자루 옷을 입고 에드워드 3세 막사 앞에 나섰다.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은 바로 이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사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임신 중이던 왕비가 처형을 간곡히 만류하였다. 이들을 죽이면 태아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왕은 고심 끝에 이들을 풀어 주었고, 6명의 시민은 칼레의 영웅이 되었다.

이 
6명의 시민 대표의 용기와 희생 정신은 지배층의 솔선수범, 높은 도덕적인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후대에 와서 왜곡되고 미화되었다고 한다.

 

1884년 칼레 시는 이들의 희생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상 제작을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에게 의뢰하였다. 2년 여에 걸쳐 완성된 '칼레의 시민'은 1895년에 헌정되었다, 그러나 완성된 이 조각품은 사람들이 기대한 영웅의 늠름한 모습이 아니었다.

비틀린 팔, 비탄에 빠진 채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은 모습 등 죽음에 대한 공포와 운명에 순종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 기념상은 원래 칼레 시청 광장에 설치될 예정이었으나,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바닷가 한적한 곳에 세워졌다.

 

이 작품은 6개 조각을 가까이 하나의 군상으로 설치하거나, 하나씩 분리하여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이작품은 청동 주조 작품이기 때문에 생전에 로댕의 허락을 받은 프랑스 정부의 관리하에 여러 작품을 찍어낼 수 있는데, 12개의 주조만이 허용되어 모두 진품으로 인정을 받는다.

첫 번째 주조본은 물론 프랑스의 칼레 시청 광장에 있다. 
1995년 12번째 마지막 주조품은 우리나라 서울 삼성생명 건물 미술관 내 로댕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로댕은 칼레 시민들이 이 6명의 영웅과 어깨를 나란히 스치며 지나다닐 수 있도록 이 작품에 받침대를 원하지 않았고, 칼레 시 한복판 바닥돌에 고정되기를 원했고, 결국 그는 비참한 영웅들의 모습을 맨 땅위에 놓는 데 성공하였다. 로댕은 영웅주의 대신 사실성 속의 진실을 선택하였고, 추상적인 가치를 보여주기보다는 희생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확인문제

14세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싸운 백년 전쟁 당시 프랑스 칼레시를 구한 영웅적 시민 6명을 소재로 한 "칼레의 시민'이라는 조각품을 남긴 조각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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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알아보기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이 전시되어 있는 12곳

1. 프랑스 칼레- 시청 광장

2. 덴마크 코펜하겐 - 니 칼스버그 조각관

3. 모랑벨츠 - 마리몽 미술관

4. 영국 런던 - 국회의사당

5. 미국 필라델피아 - 로댕미술관

6. 프랑스 파리 - 로댕박술관

7. 일본 도쿄 - 국립 서양미술관 

8. 스위스 바젤 - 쿤스트하우스

9. 미국 워싱턴 - 허쉬혼 미술관

10. 미국 로스엔젤레스 - 노턴 사이먼 미술관

11. 미국 뉴욕 - 현대미술관

12. 한국 서울 - 로댕 갤러리


EBS 지식채널e 275 여섯 명의 시민들 1부

http://www.youtube.com/watch?v=8uJKh1pcfHc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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