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78호)과 함께 국내에서는 가장 큰 금동반가사유상으로 높이가 93.5센티미터이다. 1920년대에 경주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근거가 없으며, 머리에 3면이 둥근 산 모양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삼산반가사유상(三山半跏思惟像)’으로도 불린다.
균역법
1751년 영조 때 양역의 개선을 위해 실시하였던 재정 제도로, 양역가를 2필에서 1필로 감한 조치이다. 균역법에서는 농민 1인당 2필씩 납부하던 군포 양을 1필로 줄여 주었다. 균역법은 농민의 큰 부담이던 군포세를 2필에서 1필로 줄여주고, 그 대신 나머지 명목의 세를 더 거둠으로써 양민부담의 완화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환국
시국이나 정국이 바뀌었다는 것을 뜻하며,. 조선 후기에 집권 세력이 급변하면서 이에 따라 정국이 바뀌는 것을 가리킨다. 숙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여러 붕당으로 권력을 교체해 가며 정국을 주도하였다.
탈춤(탈놀이)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전해지는 얼굴에 탈을 쓰고 벌이는 전통 가면극을 말한다. 탈춤의 특징은 서민의 생활 경험을 무극적으로 엮어 가면서 한바탕 흥과 난장판을 이루어 감정을 풀어서 삶에 활력을 찾는 것이다. 판소리, 꼭두각시놀음, 무당굿놀이 등과 더불어 민속극의 중요한 한 갈래이다.
사설 시조
'장시조', '장형시조'라고도 부른다. 조선 중기 이후 발달해 초장, 중장이 제한 없이 길고, 산문적 성질의 서민적 내용이다. 본래는 만횡청이라 하여 창법의 명칭으로 쓰이다가 문학 양식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대동법
조선 후기에 공납제를 폐지하고 그에 대신해서 제정·실시한 재정 제도이다. 공납은 집집마다 토산물을 부과하던 것에서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쌀, 옷감, 동전으로 거두는 대동법을 실시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기 시작하여 1708년(숙종 34)에 완성되었다.
용비어천가
조선 세종 때 태조의 4대 조상과 역대 왕들의 공적을 기리고, 조선 건국이 하늘의 뜻이라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조선 왕조의 정당성을 강조하였다. 훈민정음으로 쓰인 최초의 문학 작품이다.
경복궁 근정전
조선 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삼강행실도
1434년(세종 16) 직제학(直提學) 설순(?循) 등이 왕명에 의하여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부자·부부의 삼강에 모범이 될만한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모아 만든 책이다.
의방유취
조선 세종 때 국내외의 다양한 한의학 관련 문헌을 집대성한 저술로, 국가 기관에 의해 편찬된 의학 서적이다. 원간본은 을해활자로 간행된 것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여러 본이 복간되었다. 현재 이 원간본은 일본의 궁내성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12권이 분실되고 254권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