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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부정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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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은 1960년 3월 15일에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유권자 수를 조작하고 투표함을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부정을 저질렀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1956년 이승만은 제3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 신익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진보 성향인 조봉암도 상당한 표를 얻었다. 부통령에는 민주당의 장면이 자유당의 이기붕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가 있었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갑자기 사망하여 이승만의 당선은 거의 확실해졌다. 그러나 정부와 자유당은 당시 대통령 이승만의 12년이나 지속되어온 장기 집권 체제를 연장함과 동시에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대규모 부정 행위를 저질렀다. 이를 3·15 부정 선거라고 한다.


▲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족의 부축을 받으며 투표하고 있는 노인(1960.03.15.)(*)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부정 선거 수법은 다양하였다. 일정 비율의 표를 사전 투표해서 투표함에 채워 넣는 방식은 기본이고, 3인조 9인조 투표라고 해서 세 사람이나 아홉 사람씩 짝을 지어서 투표소에 들어간 뒤 서로 확인을 받게 하였으며, 죽은 사람을 버젓이 선거인 명부에 올려 자유당 표에 추가하였다. 투표소 안팎으로 무장 경찰을 배치하고 관권을 동원해 유권자를 협박하는 등의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였다. 더구나 부정 개표까지 자행된 결과 이승만 대통령이 소속되어 있던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이 무려 95~99%에 이르렀다.


▲ 개표소에 도착해 개봉되는 제4대 정·부통령 선거 투표함(1960.03.15.)(*)


그러나 이 같은 부정 선거는 선거 당일부터 대규모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마산 시민들의 시위가 거셌는데, 이를 해산하기 위해 경찰이 실탄을 발포하여 최소한 8명이 사망하고 72명이 총상을 입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날 행방불명됐던 김주열 군은 최루탄이 눈에 박혀 숨진 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4월 19일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4월 26일 대통령 이승만이 하야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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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진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정책방송원에서 공공누리 제4유형으로 개방한 것을 이용하였습니다.

  

확인문제

1960년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지지른 대대적인 부정 선거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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