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인 소만 무렵에는 본격적인 여름철이 시작됩니다. 잎이 우거진 산과 들은 더욱 푸르게 변하고 찔레와 아카시아 꽃이 핍니다. 더불어 고추와 토마토, 가지 꽃이 피고, 오이와 호박의 넝쿨은 뻗어나가며, 여름걷이인 하수(夏收)가 시작되어 보리를 베기 시작합니다. 예부터 모내기 시작의 기준으로 삼은 때가 바로 소만이었으며, 이와 같이 농가는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맞이합니다. ‘부엌의 부지깽이도 밭일 거들고, 발등에 오줌 싼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분주한 농번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농기계의 발달로 손쉽게 모내기를 하는 것과는 달리 일손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주로 가족이나 이웃들과 품앗이로 모내기를 했습니다. 모내기를 하는 논의 주인은 음식을 마련하여 일꾼들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과 나그네에게까지 베풀었습니다. 논 주인의 아내는 밥 한 숟가락을 논에 떠 넣으며 ‘한 마지기에 한 섬씩 나오도록 도와주세요’라며 빌기도 했습니다.

 ‘봉선화 물들이기’는 소만 무렵에 행한 대표적인 풍속입니다. 예부터 봉선화는 귀신이나 뱀을 쫓아낸다고 여겨 집의 울타리 밑이나 장독대 옆, 밭 둘레에 봉선화를 심었습니다. 예전에는 봉선화물을 남자아이들도 들였는데 이는 봉선화의 붉은색이 병마를 쫓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봉선화물이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말은 오늘날까지 내려와 요즘도 여름철이면 봉선화물을 들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소만에 먹는 음식으로는 대나무의 땅속줄기 마디에서 돋아나는 어린 싹인 ‘죽순’이 있습니다. 죽순은 어린 싹이 나와서 열흘(旬: 열흘 순)이면 대나무로 자라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못 먹게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모든 산과 들이 푸르게 변하는 소만에 대나무는 푸른빛을 잃고 누런색을 띕니다. 이는 새로이 돋아나는 죽순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줄기는 빛을 잃어 황금색처럼 변하는 것입니다.

 만물이 성장하는 절기인 소만. 농사일로 바쁜 때이지만 농작물이 성장하는 만큼 농가의 보람도 더해지는 절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