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생애
헤겔은 1770년 8월 27일 독일의 남서부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슈투트가르트 문법 학교에서 평범한 학생 시절을 보낸 후 헤겔은 1788년 18세에 튀빙겐 대학의 신학부에 입학하여 2년간 철학과 고전을 배웠다. 여기에서 그는 신론적 시인 휠덜린이나 자연 철학자 셀링과 같은 친구들과 교유하며 지적인 호기심을 더 갖게 되었다.
헤겔은 졸업 후 7년간 베른,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를 한 뒤 1801년 예나로 옮겨 셸링이 교수로 활약하고 있던 예나 대학교 강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셸링의 사상에 동조하여 잇달아 논문을 발표하였으나, 차차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다.
1805년 예나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1807년 최초의 주요 저서 “정신 현상학”을 출판하여 독자적 노선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나폴레옹군의 침공으로 대학이 폐쇄되자, 헤겔은 잠시 동안 밤베르크 시에서 신문 편집 일을 하였으며, 1808년부터 1816년까지 뉘른베르크의 한 김나지움에서 교장직을 맡았다.
헤겔은 이곳에서 두 번째 저서 “논리학”(1812~1816)을 저술하였고, 이 저서로 인해 여러 대학으로부터 초빙을 받았다. 181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로 취임하였으며, 이어 “철학강요”(1817)를 저술하였다. 1818년에는 프로이센 정부의 초청으로 베를린 대학 교수가 되었고, 곧 마지막 주저 “법철학 강요”(1821)를 내놓았다.
“법철학 강요”를 출판한 뒤 헤겔은 강의에 전력하였다. 베를린 시절은 헤겔의 가장 화려한 시절로서 그의 열성적인 제자들에 의해 헤겔학파가 형성되었고, 해외까지 명성을 떨쳤다. 1831년 베를린에 퍼지기 시작한 콜레라에 걸려 61세로 사망하였고, 자신의 희망대로 피히테 옆에 안장되었다.
헤겔의 사상
“저는 여러분의 신뢰를 얻고 그 신뢰에 성공적으로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선 여러분이 무엇보다 학문에 대한 신뢰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진리의 용기이며, 정신이 지닌 위력에 대한 신뢰는 철학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인간은 정신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최상의 것에 걸맞게 존경할 필요가 있고 또 존경해야만 하며, 자신이 지닌 정신의 위대함과 위력에 대해 아무리 많이 사유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헤겔의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 취임 연설문' 중에서-
헤겔에 의하면 절대자는 이성(理性)이고 그 본질은 자유이다. 따라서 역사는 자유가 그 속에서 전개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며, 단 한 사람 전제 군주만이 자유였던 고대로부터, 소수의 사람이 자유이던 시대를 거쳐 모든 사람이 자유가 되는 시대로 옮겨간다. 그리하여 현대는 바로 이 마지막 단계가 실현되어야 할 시대라고 보았다. 헤겔은 이러한 근본사상을 바탕으로 장대한 철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헤겔 사상의 입장은 절대적 관념론이다. 그는 모든 대상들, 실제로 우주가 하나의 절대적 주체인 절대 정신의 산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이 절대 정신은 그의 논리학이나 변증법적 과정 속에 잘 설명된다.
헤겔의 논리학이나 변증법적 과정은 3단계의 운동이다. 일반적으로 이 같은 변증법적 과정의 세 단계는 정립(These)에서 반정립으로 운동한 다음에 종합(Synthese)의 운동으로 나아간다. 종합은 또 다시 새로운 정립이 되어서 한 동안 이 세계를 움직인다.
이것은 그가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의 모순, 대립을 매개하여 통일한 것에서 비롯한다. 철학은 이성 개념(=절대자)의 체계이거니와 이성적 개념은 과정이다. 곧 모든 이성 개념은 원래 자기와 반대되는 것을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기에 정립(These)은 반드시 부정되어 그 반대자로 옮겨지고, 또한 그 반대자 역시 또 부정되어서 다시 새로운 제3의 더 포괄적이고 높은 단계의 개념으로 발전하여 갈 수 밖에 없다.
이 때 처음의 두 모순 개념은 제3의 개념의 계기 구실을 하게 된다. 곧 정립(定立hese), 반정립(反定立 Anti-these), 종합(綜合Synthese)의 3단계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종합은 정립과 반정립을 아주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새로운 형태로 살려서 보존한다.
그리고 긍정과 부정을 함께 간직하는 새로운 긍정도 아직 완전한 전체적 진리일 수 없고, 다시 그 반대자로 전화하고 또 이것과 저것은 새로운 통일의 단계로 自己 內 復歸된다. 이렇게 절대자가 자기를 자각하는 과정이 변증법이고, 이 3단계의 변증법으로 구성된 것이 그의 철학 체계의 전체를 이룬다.
헤겔 철학의 역사적 의의는 18세기의 합리주의적 계몽 사상의 한계를 통찰하고 역사가 지니는 의미에 눈을 돌린데 있다. 그의 철학은 관념론적 형이상학으로 인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역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19세기 역사주의적 경향의 첫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변증법이라는 사상으로도 커다란 의의를 지녔다. 헤겔은 근대 사회의 파편화와 인간의 소외 문제 등 그시대 정치적·찰학적 문제를 정확하게 감지한 사상가였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방법을 철학적 쟁점으로 삼았다. 헤겔은 칸트에서 비롯된 독일의 고전 철학을 완성시킨 사람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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